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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소개

자작리

자작리

본래 장단도호부 장현내면 자작리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읍리를 병합하여 장남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일부 지역이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 후에도 군사분계선과 인접한 민간인 통제구역에 속하였으나, 1963년 1월 1일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의거하여 연천군 백학면에 편입되었다. 1989년 4월 1일 「군조례」 제226호에 의거, 원당출장소가 장남면으로 승격되면서 다시 장남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새말에 마을을 이루고 있는 1개의 행정리, 1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명유래

  • 가시능 : 동막골 동쪽에 있던 마을.
  • 고읍동(古邑洞), 골안, 안말 : 청룡뿌리 서쪽에 있던 마을. 고려시대와 조선 초에 장단현의 관아가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단의 옛 지리지를 참고하면, 광해군 때 이곳에 있던 장단현의 관아 건물이 현재의 파주시(옛 장단군) 군내면 읍내리로 옮겨지면서 이곳 지명이 ‘고장단(古長湍)' 또는 ‘고읍(古邑)'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한다. 현재 관아가 있던 곳은 모두 농지로 변해 버렸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와편들이 널려 있고 많은 생활유물들이 수습되기도 한다. 한국전쟁 전에는 창녕 성씨(昌寧成氏)들이 12여 호 거주했던 곳이라 한다.
  • 긴발이 : 살울이 동쪽에 있던 마을. ‘봉곡동(鳳谷洞)'이라고도 불리우던 곳이다.
  • 동막골[東幕谷] : 방대동 북쪽에 있던 마을.
  • 바깥말 : 고읍동 동쪽에 있던 마을. 한국전쟁 전에는 12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 방대동 : 벼락바위 서쪽, 항동리와 경계에 있던 마을.
  • 벼락바위[雷岩洞] : 소바위 서쪽에 있던 마을. 뒤쪽 산록에 예전에 벼락을 맞았다는 큰 바위가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 살울이 : 꽃밭모루 북쪽에 있던 큰 마을. 샛말[間村]이라는 뜻의‘삳울'이 ‘살울'로 음이 옮겨진 예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전주 이씨 화의군파 후손들이 40여 호 집성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 소바위[牛岩洞] : 꽃밭모루 서쪽에 있던 마을. 소 형상의 큰 바위가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경주 김씨(慶州金氏), 단양 우씨(丹陽禹氏)들이 살았다.
  • 오리골 : 고네미고개 서쪽에 있던 마을. 지형이 오리와 같이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한국전쟁 전에는 해평 윤씨(海平尹氏), 전의 이씨(全義李氏)들이 20여 호 살았다.

지역명칭 설명

  • 가재울[嘉齋谷] : 오리동과 긴발이 사이에 있는 골짜기. 약 300년 전 참봉 벼슬을 지낸 전주 최씨(全州崔氏) 문중의 가재(嘉齋) 최거완(崔擧完)이란 사람이 살던 곳이라 하여 그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라 한다.
  • 고네미고개[古南峴] : 골안에서 오리골로 넘어가는 고개.
  • 고랑포고개 : 자작리에서 윗고랑포로 넘어가는 고개.
  • 구지개고개 : 신복골에서 판부리의 마리개로 넘어가는 고개. 현재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새로 개통되었다.
  • 꽃밭모루 : 오리골 서쪽에 있는 모퉁이. 이 곳으로 길게 뻗어나온 산 모양이 새의 주둥이같이 생겼다 하여 ‘곶(串)'이라 하였고, 그 곶의 밖에 있는 모퉁이가 되어 ‘곶밖모루[串外隅]'라 했던 것이 음이 변하여 꽃밭모루가 된 것이다.
  • 늠나드리 : 새말 서쪽, 방죽이 있는 논. 예전에 임진강이 크게 범람했을 때 이 논까지 강물이 넘나들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 능골 : 염창고개 북쪽에 있는 골짜기.
  • 돌고개 : 신복골에서 판부리의 잣나무골로 넘어다니던 고개.
  • 되번지기논 : 새말 서쪽, 322번 지방도 아래에 있는 논. 1되의 종자로 1섬의 수확을 거두던 일등답이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방아다리논 : 골안 서쪽에 있는 논.
  • 봉내천[鳳川] : 항동리에서 발원하며 자작리를 경유, 판부리로 내려가는 개울.
  • 부군나무자리 : 새말 서쪽, 322번 지방도 옆 부군나무가 있던 자리. 부군나무는 일제강점기 초에 이미 고사하여 등걸만 조금 남아 있었다고 한다.
  • 새말[新村] : 현재 자작리 마을의 이름. 한국전쟁 이후에 새로 형성되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성주골, 승절골 : 신복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 절이 있었다고 전해 오는 곳으로 지금도 절터에는 와편과 우물이 있다고 한다.
  • 신복골[新福洞] : 청룡뿌리 동쪽에 있는 큰 골짜기. 한국전쟁 전에는 전주 최씨가 7가구 살았던 곳이다.
  • 안터 : 신복골 안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 안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던 곳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 염창고개 : 골안에서 고랑포리의 자지포로 넘어다니던 고개. 장단현에서 소금을 보관하던 염창이 있었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 오봉산(五峰山) : 고읍동 뒤편에 있는 산. 봉우리 5개가 열지어 솟아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옻우물펀데기 : 염창고개 입구에 있는 넓은 언덕. 피부병에 효험이 있는 옻우물이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 자가터모퉁이 : 원당리에서 자작리 새말로 오기 전에 있는 모퉁이. 예전에 요양 자씨가 이 곳에 살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 잣나무고개 : 고읍동에서 판부리의 잣나무골로 넘어다니던 고개.
  • 장승백이 : 소바위 북쪽에 있는 고개. 예전에 장승이 서 있었다고 한다.
  • 진따모탱이 : 청룡뿌리 끝에 있는 모퉁이. 땅이 몹시 진 곳이라 하여 ‘진땅모탱이'로 불리우다가 어휘가 변한 것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이 모퉁이에 큰 소나무가 있어 마을 주민들이 서낭나무로 받들며 신성시 하였다고 한다.
  • 청룡뿌리[靑龍峙] : 골안에서 새말 쪽으로 뻗어 나온 산부리. 고읍동에 있는 성씨 묘의 좌청룡에 해당한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현재 물탱크가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