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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소개

은대리

은대리

본래 양주근 영근면 지역으로서, 고려 멸망 후 김양남(金揚南)이 불사이군의 절개로 음터[隱垈]에 은거했다는 고사에 의하여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명천리,전곡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은대리라 하고 연천군에 편입된 이후 오늘에 이른다. 현재 4개의 행정리와 49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명유래

  • 개와막[瓦幕] : 선바위 부근에 있는 마을. 일제강점기 때 기와를 구웠던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구호주택 : 전곡읍사무소 북쪽에 있는 마을(은대 3리). 한국전쟁 후 피난민을 구호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주택이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네즈뫼 : 명천동 북쪽에 있던 마을. 옛날 네 집이 모여 살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명천동(明川洞) : 선바위 북쪽에 있던 마을.
  • 뫼안 : 어수물 남쪽에 있는 마을. 은대리 마을 중 가장 우묵한 골짜기 안에 있어 유래되었다.
  • 바레 : 뫼안 남쪽에 있는 마을.
  • 벌말[坪村] : 은대리 서북쪽 벌판에 새로 생긴 마을. 은대 리 지역이다.
  • 새통재 : 어수물 동쪽, 한탄강변에 있는 마을. 한국전쟁 이전에는 이천 서씨(利川徐氏)의 집성촌이었다.
  • 안말, 안전곡 : 전곡읍사무소 북쪽에 있는 마을. 지형이 우묵한 곳의 안에 있는 마을이라 지어진 이름이다.
  • 음터[隱垈, 盤谷] : 은대리성지 북쪽, 우묵한 지형 안에 있는 마을. 조선 태종과는 동학동방(同學同榜)이며 오랜 교유를 했던 고려 말의 진사 김양남이 망국의 한을 품고 절개를 지키며 은거한 곳이라 하여 유래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곳에는 김양남의 사적이 서려 있는 학소정(鶴巢亭)·국사봉 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안동 권씨(安東權氏)가 80여 호 정도 세거했다고 한다.

지역 설명

  • 가사평(袈裟坪) : 전곡읍 은대리·전곡리, 연천읍 통현리에 걸쳐 있는 평야. 군 제일의 곡창지이다. 이 곳의 토질이 점토질 성분인 까닭에 이른 봄 해빙기나 여름철 우기 때 인마의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질고 미끄러워 한탄강에서 통현리까지의 20리 벌판길을 통과하자면 탈진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가사평이란 지명은 예전에 어떤 스님이 이 벌판을 지나다 진흙속에 넘어지고 자빠지기를 거듭하여 걸음을 옮길 수 없자, 입고 있던 가사를 벗고 갔다는 사실에서 유래되었다.
  • 고로지 : 은대리 남쪽, 전곡리와 경계가 되는 긴 개울. 지형이 깊고 우묵하여 예전에 문둥이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현재는 하수종말처리장이 있다.
  • 공동묘지 : 한양골 고개 남쪽에 있는 묘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 구전곡 : 예전에 전곡의 중심지로 지금의 위탁상회 부근이다.
  • 모퉁이 : 전곡시가지 북쪽, 주유소 앞에 있는 사거리의 옛 지명.
  • 물푸레쟁이 : 네즈뫼 북쪽에 있던 물푸레나무 정자. 한국전쟁 이전까지 큰 물푸레나무 고목이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 비석거리 : 구호주택 서쪽에 있던 옛날의 통행로. 이 곳에 일제강점기 때까지도 무쇠 비석이 있었다 하는데 한국전쟁 이후 없어졌다.
  • 삼형제바위, 땡땡바위, 용바위 : 은대리성지 서쪽, 한탄강과 장진천이 합류하는 곳에 있는 바위. 한 과부가 아들 삼형제를 기르는데, 우애가 지극하여 여름에 일하다가 한탄강에 목욕 하러 갔는데, 막내가 잘못하여 물에 떠내려 하는 것을 본 형 둘이 구하려 하다가 모두 빠져 죽었다. 아들을 잃은 과부가 애통하여 강가를 헤매면서 울부짖은 지 석달만에 삼형제의 영상이 강 가운데 나타나더니 갑자기 바위로 변하였다고 한다. 그 후부터 해마다 사람이 빠져 죽으므로 큰 바위에 제단을 모으고 제사를 지낸다 한다.
  • 새점고개 : 선바위 남쪽에 있는 고개. 장진천 건너의 황지리 새점으로 가는 고개라 하여 붙여졌다.
  • 새점나루 : 선바위 남쪽의 장진천에 있던 나루. 예전에는 물이 많아 배로 통행을 했으나 지금은 수량이 줄어 돌 징검다리로 통행한다.
  • 서나드리 : 은대리에서 군남면 왕림리의 지루개와 서산으로 건너다니던 나루터. 현재는 콘크리트 다리가 있다.
  • 선바위[立岩] : 은대 2리 장진천변에 있는 둘레 약 50m, 높이 0m 크기의 바위산. 이 사랑이란 장사가, 이 바위에서 노는 선녀를 보고 욕정을 못이기어 도끼로 바위를 찍으며 바위 위로 올라가려 했다. 이에 선녀가 놀라 하늘로 올라가자 이사랑은 강물에 빠져 죽었다 한다. 은대리 벌판 한편에 우뚝 서 있는 이 바위에는 장사가 찍었다는 도끼 자국이 남아 있으며 아랫부분이 거의 반이나 깍여 넘어질 듯 서 있다 하여 후세 사람들이 '선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어수물[御水井] : 태종 이방원이 고려 충신인 이양소를 만나기 위해 친히 연천으로 행차하던 중 이 곳 우물에서 물을 마셨다 하여 유래되었다. 은대 4리 지역이다.
  • 용모소 : 서나드리 남쪽의 장진천에 있는 소. 장진천 중앙에 위치한 이 소는 물 속에 용굴이 있어 용이 산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굴 위에는 큰 용을 닮은 바위 2개가 있다.
  • 주주물 : 전곡종합고등학교 북쪽에 있던 유명한 우물. 현재는 매몰되어 없어졌다.
  • 학수쟁이[鶴巢亭] : 음터 북쪽의 현무암 절벽 위에 있던 정자. 김양남은 음터에 은거하여 절개를 지킨 고려의 신하였다. 그가 이곳에 조그만 초가 정자를 지은 후부터 학이 날아들어 둥지를 틀고 그와 벗하며 놀았다 하여 붙여졌다. 그가 죽자 학들도 어디론가 날아갔다고 한다.
  • 한양골고개 : 전곡읍내에서 음터로 통하는 고개.
  • 흙구덩이 : 주주물 동쪽에 있던 큰 구덩이. 일제강점기 때 전곡리 높은여울에 있던 점터에서 이곳의 흙을 채취하여 옹기를 구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