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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안내

궁평리

궁평리

본래 양주군 청송면 지역으로 인조와 귀인 조씨(貴人趙氏) 사이의 둘째 아들인 낙선군 이숙(李潚)의 묘와 재궁이 있어 ‘궁말'이라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의해 포천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평촌을 병합하여 궁평리라 해서 청산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 직후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었고 1983년 「대통령령」 제11027호에 의하여 연천군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 2개의 행정리, 15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명유래

  • 건너말 : 의요동 안에 있던 마을. 배나무골 마을의 건너에 위치한다 하여 붙 여진 이름이다.
  • 궁말[宮村] : 낙선군 묘 아래에 있는 마을. 8*15 해방 전까지도 낙선군의 제사를 받들던 재궁이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한국전쟁 전 공산 치하에서 사당을 헐어 양촌말에 면사무소를 세웠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 한다.
  • 돌겻내 : 양촌 북쪽에 있는 마을. 백의리에서 내려오는 용수개울의 건너에 있다 하여 ‘돌건너'라 불리워오다 지금의 명칭이 되었다. 한국전쟁 전에는 전주 이씨(全州李氏)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 아랫말 : 의요동에서 가장 아래에 있던 마을.
  • 양촌(陽村) : 황새봉 아래에 있는 사거리 남쪽 마을. 하루 종일 해가 잘 들어 지어진 이름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윤씨*김씨*이씨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번화가로 변해 있다.
  • 의요동(蟻腰洞) : 평촌 남쪽에 있던 마을. 백의리 개미산 옆에 있는 큰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전주 최씨와 함종 이씨가 12대째 집성촌을 이루었으나, 지금은 군부대가 위치하고 있다.
  • 중간말 : 뒷골 입구에 있는 마을. 양촌과 아우라지 중간에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평촌(坪村) : 양촌 남쪽 벌판에 있는 마을. 한국전쟁 전에는 파평 윤씨(坡平尹氏)가 살던 마을이었다 한다.
  • 호조골 : 되네미고개 북쪽 골짜기의 작은 마을.

지역명칭 설명

  • 가운데들 : 돌겻내 동쪽에 있는 들.
  • 고막은고개 : 궁말에서 돌겻내로 넘어다니던 고개. 낙선군 묘의 좌청룡이 되는 산부리가 잘룩하기 때문에 지기가 허하다 해서 이 곳을 흙으로 높이 막았다 하여 지어진 고개 이름이다.
  • 깃대봉[旗峰] : 소경고개 서쪽에 있는 봉우리. 높이 157m. 일제강점기 때 세부 측량을 위해 이 봉우리 정상에 표준기를 꽂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도리소 : 아우라지에 있는 소. 한탄강과 영평천이 합류하며 물이 크게 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 되네미고개 : 대전리와 사이에 있는 고개. 현재 322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오 키요마사(加藤淸正)가 서울을 거쳐 함경도로 북진하던 중 이 고개에 이르러 휴식을 취할 때, 동네 이름을 묻자 청송(靑松) 땅이라 하니 본국에서 제 누이가 ‘조선에 가거든 소나무 송(松) 자를 주의하라'는 말이 생각나서 군사를 거두어 다시 고개를 되넘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 뒷골 : 아우라지 남동쪽에 있는 골짜기. 중간말의 뒤에 있다 하여 붙여졌다.
  • 매골 : 건너말 남쪽에 있는 골짜기. 산의 고어 ‘뫼'가 변하여 ‘매'로 불리우고 있는 곳으로, ‘산골짜기'라는 뜻이다.
  • 무쇠말등 : 의요동 남쪽의 종현산에 딸린 산등. 일제강점기 때 산의 혈을 끊기 위하여 무쇠로 말을 주조하여 묻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 배나무골 : 의요동의 세 골짜기 중 가운데 골짜기. 옛날에 배나무가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골짜기 입구에 의요동에서 가장 큰 마을이 있었다.
  • 봇들[洑坪] : 양촌 동쪽에 있는 들판. 의요동에서 내려오는 개울에 보를 막아 관개하는 논이 있는 벌판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봉화재[烽火 峴] : 한자골 북쪽에 있는 고개. 높이 183m. 옛날에 봉화를 올리던 곳이라 하나 현재 아무런 유구도 남아 있지 않다.
  • 부군터 : 돌겻내 마을에 있는 터. 한국전쟁 전까지도 세 그루의 참나무가 있어 마을에서 부군나무로 받들고 매년 제사를 올렸다. 한국전쟁으로 나무가 없어져 지금은 아무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 비독소 : 한탄강댐 서쪽에 있는 소.
  • 산안골 : 깃대봉 북쪽에 딸린 골짜기. ‘소란골'로도 불리우나 ‘산의 안쪽에 있는 골짜기'라는 뜻의 이름이다.
  • 새재고개 : 의요동과 백의리 나븐골 사이의 고개. ‘새[間]'와 ‘재[峴]'가 합하여 ‘새재'가 되었다가 다시 ‘고개'가 합쳐져 만들어진 이름이다.
  • 소경고개 : 매골과 대전리 연미골 사이에 있는 고개. 무학대사가 어떤 사대부의 묘자리를 찾으러 다니던 중 연천읍 고문리를 지날 때 멀리 정남향에 있는 고개가 5대 정승, 5대 천석군이 나올 명당임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한탄강을 건너 이 곳에 이르러 쇠를 놓아 보았으나 끝내 혈을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풍수의 대가인 자신이 눈 뜬 장님과 같다 하여 이 고개를 넘어가며 ‘소경고개'라 이름지었다 한다. 예전에는 이 고갯마루에 큰 돌 서낭당이 있었다.
  • 아우라지 : 한탄강과 영평천이 합류되는 곳에 있는 강.
  • 용수개울 : 백의리 박석고개 삼거리에서 내려오는 개울.
  • 장승거리 : 돌겻내와 중간말 사이에 있는 조그만 언덕 길. 풀무산이 중간말을 내려다 보며 억누르는 형상이라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자주 일어나자 이 곳에 장승을 세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전쟁 중에 장승이 없어졌는데, 1994년 2월 22일 궁평리 주민들의 발의에 의해 2기의 목장승을 다시 세웠다.
  • 장시미골 : 평촌 서쪽에 있는 골짜기. 현재 군부대가 있다.
  • 장파골 : 가운데들 동쪽에 있는 골짜기. 고려시대 장이 섰던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 찬우물고개[冷井峴] : 궁평초등학교에서 찬우물로 넘어다니던 고개. 정상에 서낭당이 있었다고 한다.
  • 찬우물 : 양촌 서쪽에 있는 골짜기. 찬 샘이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 피아골 : 새재고개 남쪽에 있는 골짜기. 피가 많이 자생하던 골짜기라는 ‘피밭골'이 변한 이름이다.
  • 한자골 : 궁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한'은 크다는 뜻으로 예전에 장탄리 장수개 마을로 넘어다니던 큰 고개가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이다.
  • 황새봉 : 궁평초등학교 동쪽에 있는 봉우리. 어떤 사람이 이 곳에 묘를 쓰기 위해 땅을 파니 큰 황새가 날아갔다고 하여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일설에는 산의 형태가 황새 형국이라고도 한다. 한국전쟁 전에는 궁말 주민들이 산 정상에서 산제를 올렸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