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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안내

현가리

현가리

원래 연천현 동면 가척리(加尺里)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척동과 현사동을 병합하여 현사동의 '현' 자와 가척동의 '가' 자를 따서 현가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 1954년 1월 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 1개의 행정리, 12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명유래

  • 가무사리[玄沙洞] : 도당골 북쪽에 있는 작은 마을. 한국전쟁 전에는 남양 홍씨(南陽洪氏)의 집성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 가재울[加尺洞] : 벼락바위 부근에 있던 마을. 한자 표시인 '가척동'은 가장자리의 사투리인 '가새'나 '가쟁이'를 한자로 옮겨 쓰는 과정에서 실제의 뜻과 연관이 없는 '加尺' 또는 '佳尺'으로 표기한 것이다. 즉, 가재울은 차탄천변의 '가장자리 언덕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한국전쟁 전에 이 마을에는 진주 강씨(晋州姜氏)들이 집성촌을 이루었으나, 수복 이후에 민간인 입주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 도당골[陶唐洞], 청화동(淸華洞) : 가무사리와 가재울 사이에 있는 마을. 조선 개국 초 고려 신하 이양소(李陽昭, 367∼?)가 숨어 지냈던 곳이다. 그의 높은 지조를 후세 사람들이 도연명에 비견할 만하다 하여 도연명이 은일한 곳인 '도당'에서 뜻을 따와 도당동이라 이름지었고, 조정에서 내려준 그의 시호인 '청화'에 연유하여 청화동이라고도 불리우고 있는 유서깊은 곳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여흥 민씨(驪興閔氏)가 집성촌을 이루었던 마을이다.

지역명칭 설명

  • 귓논 : 절텃골 앞에 있는 논. 귀가 진 모서리에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긴등 : 현가리와 군남면 옥계리의 경계가 되는 긴 산등.
  • 매봉 : 현가리와 읍내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 예전에 매 사냥을 했던 곳이라 한다.
  • 벼락바위 : 가재울 중앙에 있는 바위. 예전에 연천 지방에 심한 가뭄으로 기아에 허덕이던 때에 처자식을 거느리고 구걸을 다니던 한 가족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바위에서 어린 자식을 죽인 일이 있었다. 마침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쳐 부모는 벼락에 맞아 죽고, 넙적한 모양의 바위는 지금의 모습처럼 깨져버렸다 한다.
  • 선덩어리 : 도당동 중앙에 있는 둥근 산.
  • 쇠주골[巢鳥洞] : 도당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숫돌봉 : 가재울 서쪽, 군남면 옥계리와 경계에 있는 봉우리.
  • 안골[安谷] : 도당골과 가무사리 사이에 있는 작은 골짜기.
  • 읍고개 : 가재울에서 읍내리로 넘어가는 고개.
  • 잣나무골 : 도당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 잣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 절텃골[寺垈洞] : 가재울과 도당골 사이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 절이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나 문헌에 상세하게 전해 오는 것이 없고, 다만 빈대에 의해서 폐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올 뿐이다. 현재 절이 자리했던 곳에 민가가 들어섰으며 그 옆에는 이 절에서 사용했다는 우물이 남아 있다. 한국전쟁 전에는 청풍 김씨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연천읍 식수를 관리하는 상수도사업소가 있다.
  • 지당골 : 가재울 중앙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 '지당암'이라는 절이 있었다는 설과 산제당이 있었다는 두 가지 유래가 전해 오는 곳으로, 현재 그 터에서는 소량의 와편이 출토된다.
  • 청화산(淸華山) : 가무사리 서쪽의, 군남면 옥계리와 경계가 되는 산. 『순천이씨세보』에 의하면, 도당골에 은거했던 이양소가 매일 이 산에 올라 송악을 향하여 망궐례(望闕禮)를 올리며 고려조의 신하로서 절개를 지킨 곳이라 하여, 조정에서 그의 뜻을 가상히 여겨 이 산을 “백이의 맑은 기풍과 희이의 빛나는 산이라 (伯夷之淸風希夷之華山)”는 뜻에서 두 자를 취해 '청화산'이라 명명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