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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소개

상리

상리

본래 연천현 동면의 지역으로 '웃골'이라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좌찬리(左贊里)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해 '웃골'에서 이름을 따 '상리'라 하고 군내면에 편입되었으나, 1945년 해방과 동시에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이게 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1954년 1월 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 2개의 행정리, 20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명유래

  • 고터동[庫垈洞] : 신망리역 북쪽에 있는 마을. 조선시대에 이 부근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보관했던 연천현의 읍창(邑倉)이 있던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연주 현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 다방거리(茶房巨里) : 경원선 동쪽에 있는 마을. 1954년 수복 후 연천읍 관내에 최초로 다방이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새능 : 신망리역 서쪽에 있던 마을. 예전에 어떤 사람이 이 곳에 큰묘를 썼다 하여 새능으로 불리우고 있으나 현재 묘는 확인되지 않으며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 신망리(新望里) : 경원선 서쪽에 형성된 시가지. 이 곳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인 954년 5월 피난민 정착 지역으로 지정되어, 미군 제7사단에서 3만 평의 부지 위에 세대당 330㎡의 대지에 59.4㎡ 크기의 목조 가옥 00호를 건립하여 선착순으로 피난민을 입주시켰다. 당시 연천읍에서 가장 먼저 입주가 시작된 이 곳을 미군들이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살라는 뜻의 신망리(New Hope Town)로 명명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 웃골[上洞] : 밤골 위에 있던 마을. 상리의 유래가 되는 곳이다.
  • 쟁골[齋宮洞] : 마정승 묘 서쪽에 있던 마을. 원의 마지막 황제인 순제(順帝, 333∼1367)의 황후였던 기황후(奇皇后)의 묘와 재실이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한국전쟁 전까지 한양 조씨(漢陽趙氏)가 집성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 좌찬이[左贊洞] : 새능 북쪽에 있던 마을. 조선시대에 의정부 좌찬성 벼슬을 한 우계 이씨(牛溪李氏)가 살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 큰밤골[栗洞] : 필리핀군 참전비 서쪽에 있는 골짜기. 밤나무가 많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한국전쟁 전에는 파평 윤씨(坡平尹氏)들이 집성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 황해촌(黃海村) : 닭운이 남쪽에 있는 마을. 한국전쟁 이후 황해도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지역명칭 설명

  • 닭운이[鷄鳴洞] : 아랫쟁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 임씨 성을 가진 사람이 묘를 쓰려고 땅을 파니 닭이 울며 나왔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그러나 본래의 뜻은 ‘산 안에 있는 마을' 이다. 산은 고어 ‘닫'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닫'이 지금에 와서는 그 음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드물고 연철 음절과의 관계나 다른 낱말과 유사성으로 인하여 ‘닷',‘닥', ‘닭'등으로 옮겨간 것이 대부분인데, 닭운이의 예에는 닭(山) + 안(內)> 다간 > 다그니> 달그니> 닭운이로 변한 것이다.
  • 당이네구럼 : 솟을봉 옆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 당인(唐人)이 살았다고 한다.
  • 동묘고개[東墓峴] : 원골에서 와초리의 능골로 넘어다니던 고개. 동가(東家)의 묘가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 동이정골 : 망골 남쪽에 있는 조그만 골짜기. 동이우물이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둠뫼산 : 좌찬동 중앙에 있는 둥근 산.
  • 등정골, 된정굴 : 마정승 묘 북쪽에 있는 골짜기.
  • 망골 : 신망리역 북쪽에 있는 골짜기.
  • 미래고개 : 필리핀군 참전비 앞에 있는 고개. 현재 324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 미래골 : 신망리역 남쪽에 있는 골짜기. 미래고개 옆에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솟을봉 : 좌찬이 북쪽에 있는 봉우리. 중면 합수리와 경계를 이루며, 이 곳을 기점으로 하여 군자산과 옥녀봉으로 양 산맥이 갈라진다.
  • 시랑말고개 : 쟁골에서 중면 합수리의 시랑말로 넘어다니는 고개. 시랑말에서는 ‘쟁고개'라고 부르기도 한다.
  • 아랫쟁골 : 닭운이 서쪽에 있는 조그만 골짜기. 재궁동의 아래에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외산부리 : 솟을봉에서 재궁동으로 뻗어 내려온 산부리.
  • 원골[院谷] : 둠뫼산 동쪽에 있는 큰 골짜기. 조선시대에 관원과 나그네들이 이용하던 국영 여관인 원이 있던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당시에는 한양과 함경도를 잇는 역로(驛路)가 이 곳을 거쳐 철원도호부로 연결되었다.
  • 원모루[院隅] : 현 상리초등학교가 위치한 곳의 옛 이름으로, 옛날 원의 앞에 있는 모퉁이. 한국전쟁 전에는 장승과 주막이 있었으며, 부근에는 연주 현씨들이 마을을 이루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