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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정 문화유산

연천 심원사지 이미지
연천 심원사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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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심원사지2081
  • 주소 :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동내로 970번길 32-268
  • 문의처 : 연천군청 문화체육과 031-839-2565 / (주말, 근무시간 외) 연천군청 당직실 031-839-2119
  • 심원사는 중부 내륙의 명산인 보개산(寶蓋山)에 위치하고 있으며 석대암, 남암, 지장암, 성주암 등 여러 암자를 관장하던 지장도량의 본산이다. 이 절에서는 조선 후기 많은 고승대덕이 머무르며 생활하였던 사찰로 위와 같은 많은 암자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부대시설
  • 주차장사용(이용)가능사용(이용)불가
  • 휠체어 이동사용(이용)가능사용(이용)불가
  • 화장실사용(이용)가능사용(이용)불가
  • 장애인화장실사용(이용)가능사용(이용)불가
  • 수유실사용(이용)가능사용(이용)불가
  • 자전거 출입사용(이용)가능사용(이용)불가
  • 반려견 입장사용(이용)가능사용(이용)불가
  • 와이파이사용(이용)가능사용(이용)불가

연천 심원사지 소개

위치 및 지형

심원사는 중부 내륙의 명산인 보개산(寶蓋山)에 위치하고 있으며 석대암, 남암, 지장암, 성주암 등 여러 암자를 관장하던 지장도량의 본산이다. 이 절에서는 조선 후기 많은 고승대덕이 머무르며 생활하였던 사찰로 위와 같은 많은 암자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유적 현황

심원사의 연혁에 관해서는 1942년 간행된 『楡岾寺本末寺誌』의 심원사지 편에 상세히 적혀있다. 이에 따르면 647년(신라 진덕여왕 원년) 영원조사가 영주산(현 보개산)에 영원사, 법화사, 흥림사, 도찰사를 차례로 창건한 후, 859년(헌안왕3)때 범일국사가 흥림사(興林寺)를 중창하고 천불(千佛)을 만들어 봉안하였다. 심원사는 1393년(태조2)의 화재로 모든 전각이 전소되었고, 3년 후 1396년(태조 5년) 무학대사가 건물을 삼창(三創)하면서 영주산을 보개산으로 흥림사를 심원사로 개칭하였다. 1402년(태종2), 왕위를 물려준 태조가 안변 석왕사로 가기전 심원사로 향하였다는 기록은 태조가 이 사찰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15세기 대표적인 시인 김시습이 이 사찰을 소재로 시를 지을 정도로 번성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후 1592년(선조 28년) 4창되어 서산대사의 법맥을 잇는 소요(逍遙), 태능(太能), 제월(霽月), 경헌(敬軒) 등 조선 중기의 선승들과 수많은 학승들이 주석 정진하는 도량이 되었다. 1907년 정미의병사건 때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항쟁하던 의병과 관군의 공방전 속에서 장래의 화근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관군에 의해 250여 칸의 건물과 1,602위의 불상이 잿더미로 변하면서 심원사는 완전 소실되는 비운을 맞았다.

1909년부터 점차 복구되어 1937년 주지 이진학(李鎭學)의 노력으로 유점사 본말사지에 전하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본전인 천불전, 신신각, 춘향각, 요사채 등 모두 8동의 건물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전화를 비껴가지 못하고 건물은 모두 전소되었으며 전쟁이후 얼마 전까지 사찰의 명맥은 이어지지 못하였다. 한편, 한국전쟁 이후 군사보호구역으로 남겨져 보개산 심원사의 기둥을 헐어 철원 심원사의 법당인 명주전을 건립하면서 심원사의 사적은 철원 심원사로 이전되게 되었다.

2003년~2009년 동안 발굴조사를 통하여 총 5동의 주 불전 건물과 스님들이 생활하던 다양한 승방들이 확인 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현재 본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천불전, 산신각 등이 복원되었다.

문화재 정보

  • 지정별 : 기념물 제213호
  • 지정일 : 2006.08.28
  • 지정면적 : 9,643㎡

위치 및 주변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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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동내로 970번길 32-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