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인폭포는 연천 보개산 지장봉(877.2m)에서 흘러 내려온 작은 하천이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으로 쏟아지며 경관을 이루는 폭포이다. 재인폭포는 연천군의 대표적인 명승지로 한탄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형으로 연천7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재인폭포에서는 다양한 현무암의 특징들을 관찰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주상절리를 비롯하여 하식동굴과 포트홀, 가스튜브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재인폭포 주변은 천연기념물 어름치(제238호)와 멸종위기종인 분홍장구채 등의 서식지로도 알려져 있다. 27m 높이의 투명 유리로 만들어진 스카이워크 전망대 아래로 내려가면 Y자 형태의 협곡이 이어진다. 재인폭포 주변의 나무들은 현무암을 뚫고 자라나 하늘을 가릴 만큼 울창한 협곡을 형성하였다. 높이 약 18.9m의 폭포수는 너비 30m, 길이 100m의 폭호 위로 떨어져 장관을 연출하며, 하얀 물줄기와 에메랄드빛 소가 빚어내는 색의 조화가 거대한 동굴처럼 파인 현무암 주상절리와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다. 약 200만~1만년 전, 신생대 제4기 홍적세(洪積世) 당시 10회 이상의 화산활동을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점성이 약한 현무암질 용암(마그마)이 대량으로 분출하여 철원-평강 일대에 현무암질의 평원을 형성했다. 지금의 강원도 평강군에 있는 오리산(454m)과 680m 고지에서 분출한 용암은 한탄강을 따라 흐르다가 작은 하천을 거슬러 오르는 역류 현상을 일으키며 현무암 지대를 형성하였다. 이후 굳어진 현무암 위로 지장봉을 따라 흐르던 계곡물이 오랜 세월 흐르면서 암석을 침식시켜 지금의 재인폭포를 만들었다. 특히, 재인폭포와 주변 현무암 협곡을 따라 노출된 20~25m 두께의 현무암층은 하부로부터 기공이 잘 발달된 수평절리와 수직·방사상 절리, 괴상의 현무암 반복구간 등 수 회 반복된 용암의 흐름을 알려준다. 용암으로 인해 형성된 현무암층 3매는 54만년 전에서 12만년 전까지 크게 3차례에 걸쳐 용암이 흘렀음을 알려준다. 각 주상절리는 20~30cm의 직경을 가진 4~7각형의 단면이 우세하며, 단면과 더불어 수직방향으로도 다소 불규칙한 방향성과 두께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재인폭포는 원래 평지였던 곳이 갑자기 움푹 내려앉으며 지장봉에서 흘러내리던 계곡물이 폭포를 이루며 형성되었다. 높이 약 18m에 달하는 폭포는 계속해서 폭포 아래를 침식시켜서 수심 5m에 달하는 포트홀을 만들었다. 포트홀이란 하천에서 암석의 오목한 곳이나 깨진 곳에 와류(물이 회오리 치는 현상)가 발생하여 깊은 구멍이 생겨난 것을 말한다. 또한 폭포의 물살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주상절리를 조금씩 침식시켜 나갔고, 폭포도 조금씩 뒤로 물러앉는 두부침식을 일으켰다. 두부침식(頭部侵蝕 , headward erosion)이란 하천 침식형태의 하나로 하천이 상류 쪽으로 침식하여 그 길이를 증가해 가는 현상을 말한다. 지반(地盤)이 융기하거나 해수면이 하강하면 하천의 침식력이 부활되어 하방침식을 활발히 하게 되는데, 그 침식은 기준면(base level)으로부터 상류 쪽을 향해 진행된다. 재인폭포는 하천에 발달한 폭포가 상류 쪽으로 점차 그 위치를 변동시키는 두부침식에 의해 형성된 지형의 전형적인 예이다. 재인폭포의 현재 위치는 강변에서 350m 정도 들어간 것이라고 하며, 폭포는 지금도 보이지 않게 변화하는 중이다. 재인폭포에는 폭포의 이름과 관련하여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광대 재인과 관련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설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 인근 마을에 금실 좋기로 소문난 광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줄을 타는 재인(才人)이었던 남편과 아름다운 아내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마을 원님이 재인폭포에서 줄을 타라는 명을 내린 것이다. 광대의 아내에게 흑심을 품은 원님의 계략이었다. 줄을 타던 남편은 원님이 줄을 끊어버리는 바람에 폭포 아래로 떨어져 숨을 거두었다. 원님의 수청을 들게 된 아내는 원님의 코를 물어버리고 자결한다. 그후로 사람들은 이 마을을 ‘코문리’라 부르게 되었고, 현재의 고문리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문헌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전설과는 또 다르다. 폭포 아래에서 놀며 자신의 재주를 자랑하던 재인(才人)이 사람들과 내기를 했다. “양쪽 절벽에 외줄을 묶어 내가 능히 지나갈 수 있소.” 사람들이 믿지 못하겠다며 자신의 아내를 내기에 걸었다. 재인이 쾌재를 부르며 호기롭게 줄을 타자 아내를 빼앗기게 된 사람들이 줄을 끊어버렸다. 흑심을 품었던 재인은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후로 이 폭포를 ‘재인폭포’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